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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2010/North Europ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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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결혼을 하기로 한 후, 일단 달력을 펴고 언제가 가장 오래 쉴 수 있는 날일지 계산을 했다. 나야 프리랜서라서 상관이 없었지만 남편은 회사원이었다. 퇴직 전에 긴 여행을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추석 연휴에 연차와 결혼 휴가를 붙이면 보름 정도 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결혼식은 추석 연휴 바로 전 토요일로 정해졌다. 그다음은 여행을 갈 장소였다. 나와 남편 모두 여행을 무척 좋아하고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노르웨이의 대자연이 끌렸다. 피오르드가 보고 싶었고, 뭉크의 그림도 보고 싶었다. 디자인 강국 스톡홀름과 핀란드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함께 꼭 가보고 싶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였지만 우리는 다음 날 바로 플롬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오슬로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나중으로 미루기로 한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열차를 타고 플롬으로 이동했다. 오슬로에서 KTX 같은 최신 기차를 타고 뮈르달까지 가고, 플롬까지는 오래된 산악열차를 타고 가야 했다. 창밖으로 회색의 도시의 풍경에서 시작해서 초록의 목가적인 풍경으로 넘어가는 드라마틱한 변화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다소 삭막한 구릉의 풍경들이 독특했다. 그렇게 창밖을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창 밖으로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9월에 눈이라니..! 기상이변이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기차가 중간에 잠깐 멈추기도 했다. 뮈르달 역에 도착해서 플롬 마을로 들어가는 산악열차로 갈아타려고 내렸다. 어디로 가야 되는지 두리번거리는데 우리 뒷 좌석에 앉았던 할머니가 손짓을 하며 나를 불렀다. 이상해서 기차에 다시 들어가자 내 자리에 우리의 전재산이 들어있던 지갑이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헉! 진짜 무소유의 여행이 될 뻔했다. 내 자리에 타려던 사람도 앉지 않고 지갑을 찾아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손을 안대서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친절하고 양심적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를 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기차를 갈아타는 곳은 야외여서 무척 추웠고, 눈도 펑펑 내렸다. 우리는 홑겹 차림으로 나는 원피스에 플랫슈즈, 남편은 얇은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었다. 주위 사람들은 패딩에 털모자에 부츠까지 단단히 준비해 온 모습이었다. 주변에 한국인 관광객도 있었는데 우리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다. 괜히 춥지 않은 척 연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추웠다. 캐리어를 잃어버린 것은 항공사의 책임이라서 짐이 없는 동안 쓰는 비용의 일부를 돈으로 보상해준다. 우리는 가장 시급했던 겉옷을 사기로 했는데 막상 살 곳이 별로 없었다. 뮈르달 역에 있는 가게에서 파는 겉옷들은 너무 비쌌고 값에 비해 질이 조악했다. 우리는 일단 좀 버텨보기로 했다.

 

 

 

 

 

 

플롬선은 세계적으로 가파른 열차노선으로 꼽힌다고 한다. 오래된 관광열차라서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바람이 슝슝 들어와서 더 추웠다. 우리는 추워서 창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구경하고 있었는데 친절한 노르웨이 신사분이 다가오더니 내 필름 카메라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우리가 창문을 열 줄 몰라서 안 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열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거절했는데 너무 친절한 분이라 끝까지 열어준다고 했다. 기대에 부흥해야 할 것 같아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척을 했다. 카메라를 잡은 손이 무척 시려서 피가 안 통하고 감각이 없어졌다.  창문 밖으로 아름다운 산과 나무가 보였다. 드문드문 있는 집들은 삼각 지붕에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있어 귀여웠고, 동화 속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드디어 플롬 역에 도착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기가 무척 좋았던 기억이 난다.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는 일단 배가 고파서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역시 물가가 비싸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피자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푸짐하고 맛있었다. 캐리어를 잃어버린 것은 항공사의 책임이라서 짐이 없는 동안 쓰는 비용의 일부를 돈으로 보상해준다. 일인당 10만 원 정도. 역에 있는 가게에서 겉옷을 팔았는데 그래도 바람막이가 될만한 방수 코트가 있어서 구입했다. 팔에 북유럽 국가들의 국기가 작게 프린트되어있었다. 마치 뉴욕에서 I LOVE NEWYORK 티셔츠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일단 따뜻해서 살았다. 겉옷 하나 생긴 것뿐인데 다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척 귀여운 소도 만났다. 다리가 어떻게 저렇게 두껍지? 앞머리는 또 어떻고.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뿔에 받히면 죽겠지요.)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는 데다가 잔디밭을 걸었더니 신발이 다 젖었다. 나에게는 여행만 가면 신발 밑창이 떨어지는 징크스가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쩍 하더니 발가락이 보일 정도로 밑창이 떨어져 버렸다. 너무 편한 플랫슈즈를 신고 온 것이 문제였다. 새 신발을 사기는 너무 가격이 비쌌고 마땅한 것도 없었다. (장식용 전통 털신 정도..)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순간접착제를 사 가지고 조심조심 걸어서 숙소에 갔다.

 

 

 

 

 

 

 

숙소는 빨간색으로 벽이 칠해진 노르웨이 전통 목조 가옥이었다. 집 사이 간격이 넓어 한적했고, 뒤편으로 멋있는 산이 병풍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내부는 소박하지만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도 고즈넉하고 여유가 있어 좋았다. 우리는 강을 따라있는 마을을 걸어 다니며 산책을 했다. 느리고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갈아입을 옷도 세면도구도 그림을 그릴 도구도 없었지만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살아가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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