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urope, 2010/North Europe, 2013

SEOUL > OSLO

SEOUL > OSLO

 

 

가방이 없어졌다. 짐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던 컨테이너 벨트도 멈췄다. 같은 비행기에 탔던 탑승객들은 모두 각자의 짐을 들고 출구로 나갔다. 텅 빈 공항이 낯설었다. 여행을 많이 간 편이었지만 공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적은 없었다. 우리는 퇴근하려는 항공사 직원을 붙들고 가방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직원은 귀찮은 듯 찾아보더니 우리의 캐리어가 경유지에서 누락되었다는 비보를 전했다. 경유시간이 짧긴 했다. 게다가 연착까지 했다. 비행기가 모스크바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전력 질주했다. 사람은 겨우 오슬로행 비행기에 탔지만 짐들은 그곳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캐리어의 모양과 크기, 색깔 등 자세한 정보를 적었다. 찾는 대로 숙소에 보내준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 초반에 매일 이동하는 일정을 잡았다. 오슬로에서 하루 묵은 후 다음 날 아침 플롬으로 떠난다. 플롬에서 하루 머물었다가 다시 베르겐으로 떠나야 한다. 이동 날짜와 동선, 숙소를 모두 적어주고 공항을 나섰다.  

 

 

 

 

 

 

 

하루 남편과 나는 결혼을 했다오후 3 예식이라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토요일 오후의 도로 사정을 계산하지 못했다도로는  막혔다당사자들이 지각을 하다니..! 그런 결혼식은  적이 없다당장 차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러 달려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창문 밖으로 참다못한 버스가 역주행하는 것도 보였다식은땀이 났다다행히 예식 시간 전에 도착했다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식장으로 뛰어 들어갔다시작부터 조짐이  이상했다그리고 축가 시간남편이  몰래 이벤트를 준비했다원래는 노래를  부르는데 긴장을 했는지 키를 너무 높게 잡았다다시 부를 수도 없어 남편은 주먹을  쥐고 그대로 끝까지 열창했다무사히 끝났다고 생각했다신랑 신부 퇴장하객들의 표정이 이상해서 옆을 보니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입술도 파란  같았다남편은 어지럽다며 휘청거렸다친구들이 웅성거렸고엄마의 친구분들이 사탕을 까서 남편 입에 넣어주었다옆에서 팔과 다리를 조금 주물렀던  같기도 하다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의자에 앉아서 조금 쉬자 다행히 남편의 얼굴색이 돌아왔다하지만 결혼식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사진도 찍어야 하고 폐백도 해야 했는데 결국  팀인 내가 남편을 지켜줘야 했다진정한 의미로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고나 할까결혼식 사진을 보면 내가 장군처럼 든든하게 서있고 남편이  팔짱을 끼고 있다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면서도 웃음이 난다.

 

 

 

 

 

 

 

결혼식은 원래 힘든 것이라지만 이 난리를 겪고 나니 둘 다 상당히 지쳤다. 비행기에 탈 때도 혹시나 필요할 수도 있는 물건들을 바리바리 꾸려 다니는 나였는데, 이번에는 짐을 가볍게 하고 푹 쉬자고 겉옷부터 운동화까지 전부 캐리어에 넣어 보내버렸다. 가방이 없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우리가 가진 소지품은 지갑, 여권, 바우처가 적힌 프린트, 다이어리 각자 한 권씩, 책 한 권씩, 칫솔과 수분크림 샘플이 다였다. 일단은 숙소로 가서 쉬기로 했다. 호텔에서 쓴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우리는 배낭을 풀러 갖고 있는 물건들 중 유용한 것들을 골라봤다. 그 모습이 무슨 무인도에 표류당한 사람들 같아서 웃겼다. 기내에서 바르려고 로션 샘플 하나와 필름 3개를 챙겨둔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고물가의 노르웨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래도 지나고 나면 다 좋은 추억이다. 우리는 씻고 일찍 잠을 자기로 했다. "

 

 

 

시작부터 사건이 생겼지만 오히려 너무 큰일이 생기니 웃기기도 했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나중에 소재로 써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면 조금 괜찮아진다. 모든 것은 경험이니까. ) 북유럽의 성수기는 여름이었지만, 9월이니 괜찮겠지 생각했다. 막상 도착한 오슬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조금은 침울한 느낌의 도시였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www.pje.kr